신화 톺아보기 :: 5.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
지난 시간, 생물들에게 줄 선물을 모두 탕진한 에피메테우스는 만물의 영장이 될 인간에게 능력을 줄 차례가 오자 크게 당황했고, 자신의 현명한 형인 프로메테우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한 부분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 당시 신들만 사용하던 '불'이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태양의 이륜차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그의 횃불에 옮겨 붙였습니다. 그 횃불을 숨겨 몰래 지상으로 내려온 그는 그 소중한 불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특별한 선물 덕분에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월등한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불을 사용한 덕에 무기를 만들어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가 있었고, 도구를 만들어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불의 열로 거처를 따뜻하게 만들어 기후가 다소 추운 곳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여러 가지 예술을 창조하고, 상거래 수단이 되는 화폐를 만들어 인간만의 문명을 크게 발전시켜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들의 도구로 인간이 번영을 누린 것에 제우스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불은 신들 이외에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에 이런 명을 어긴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로 했습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끊을 수 없는 쇠사슬로 카우카소스 바위산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불사의 몸이었기에 독수리에게 상처 입은 간은 매일 재생되었고, 형벌은 끝나지 않고 반복되었습니다. 영원불멸의 존재이기에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는 형벌이었던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가 최초의 인류를 만들어냈지만, 여자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탄생에는 다소 의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신들의 왕 제우스가 최초의 여자를 만들어서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의 이름이 바로 판도라입니다. 판도라라는 말은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흙에 물을 섞어 여신과 닮게 빚은 형상에 목소리와 힘을 불어넣자, 그녀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올림포스의 많은 신들이 그 피조물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직접 만든 옷과 허리띠를 둘러주고 면사포를 씌워줬습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매력을 주었고 헤르메스는 기만과 속임수, 아첨이나 꾀와 같은 교활한 심성을, 아폴론은 음악 등 예술적인 조예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판도라는 지상에 있는 에피메테우스에게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형인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제우스와 그의 선물을 경계하라는 주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기꺼이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제우스가 이처럼 공을 들여 판도라라는 여인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판도라라는 이름처럼 모든 것이 담긴, 모든 선물을 인간에게 주기 위해서일까요? 프로메테우스에게 형벌을 내린 것이 안타까워 동생에게 호의를 베푼 것일까요? 제우스의 의도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벌을 내린 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 제우스는 인간에게도 벌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히 신들의 불씨을 받은 인간들에게 그 대가로 재앙을 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우스는 판도라로 하여금 인간들에게 어떤 재앙을 내릴 생각이었을까요?
에피메테우스는 그의 집에 한 개의 상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해로운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터를 만들어 줄 때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자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호기심이 강한 판도라는 그의 남편이 감추어둔 이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남편 몰래 상자 뚜껑을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상자 속에 담겨있던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재액이 빠져나와 사방팔방으로 멀리 날아가버렸습니다. 판도라는 놀라 재빨리 뚜껑을 덮으려고 했으나,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것은 이미 다 날아간 상황이었습니다. 상자에는 오직 하나만이 맨 밑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떤 재난에 처해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떠한 재난도 우리를 절망할 정도로 불행하게 하지는 못 하는 것이라고 이 이야기는 말합니다.
판도라라는 여인이 제우스의 호의로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보내졌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판도라는 그녀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여러 신이 선사한 물건이 들어 있는 상자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무심코 그 상자를 열었더니 선물이 다 달아나 버리고, 오직 희망만이 남았다고 합니다. 명 번역가로 이름을 알린 토마스 불핀치는 이 이야기가 앞서의 이야기보다 더 진실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매우 귀한 보석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앞의 이야기처럼 모든 재난으로 가득찬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인간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그 여파가 어떠한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직 신화 속 인간세상에 대해 다룰 이야기가 더 있으므로 다음 편에서 초창기의 인간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인류의 연대기가 어떠한지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