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카와 로마의 기독교 문화
바실리카의 예시, 성 요한 라테란 St, John Lateran
초기 기독교 건축은 초기 기독교 의식이 이루어졌던 로마 건축 양식의 아트리움(atrium)이나 타블리니움(tablinium)이 서서히 발전한 것이었다. 매우 중요해진 바실리카(말단이 둥그렇고, 내부에 기둥이 두 줄을 서 있는 큰 교회나 회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황제의 권위가 드러난 형태 혹은 일반적인 교회 건축의 패턴을 도입했다. 그 첫 번째 예가 314년 로마의 황제 궁으로 지어진 성 요한 라테란 (St. John Lateran) 교회이다. 이 교회의 건립에 있어 바실리카 형식은 매우 논리적인 선택이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에서 그의 칙령을 반포함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제는 두 번째 부인 파우스타와 성녀 헬레나(대제의 어머니)가 살고 있던 궁전의 일부를 교황에게 제공했다. 교황은 제공받은 즉시 그곳을 성당으로 개조했다. 이것이 첫 번째 성당이었고 바티칸 성당보다 12년 먼저 세워진 공식적인 성당이었다.
이곳의 중앙은 클레어스토리(clerestory 지붕 위에 높은 채광창이 달린 층)로부터 빛이 들어오는 높은 5개의 복도로 구성되어 있다. 15개의 거대한 기둥이 두 열로 나열되어 57m에 달하는 열주를 형성한다. 전체적으로는 나무 지붕으로 덮여있었다. 큰 규모의 앱스의 끝은 성직자가 앉을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그들은 원기둥 형태의 스크린으로 하여금 민중들과 분리되었다. 100년 후, 로마는 성 요한 라테란 성당을 더 완결성 있고 우아하게 복제한 산타 사비나 성당(Santa Sabina)을 짓는다. 산타 사비나 성당의 더욱 커진 창을 통해 석조 건축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마르티리아 Martyria
로마의 도시는 더 이상 정치적, 경제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많은 순교자들의 매장 장소가 됨으로써 예루살렘처럼 종교적인 의미에서 성지순례의 중심지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무덤을 중요한 숭배의 일부분으로 여김으로써 죽음은 어둡고 순수한 하데스(죽은 자들의 나라), 혹은 파라오의 내세 영역으로의 특권이라고 여겨졌다. 죽음은 이제 개인적인 재개의 원천으로 보였다. 제례 의식은 매우 강력해졌고 그들이 숭상하는 인물의 팔이나 손가락과 같은 신체의 일부분을 소유함으로써 그들의 전체를 충분히 상징한다고 여기는 의식도 있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St. Peter's in Rome
로마의 성 요한 라테란 성당(St. John Lateran)은 교회의 정치적, 종교적, 행정적 중심을 상징하기 위한 황제의 발판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성 베드로(St. Peter)의 무덤은 많은 숭배자를 끌어들였고 성인의 순교를 기념하는 연회가 주요한 행사로 자리잡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3년경 성 베드로의 무덤에 바실리카 양식을 적용해 기독교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교회를 설립했다. 성 베드로 성당은 성 요한 라테란 성당과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넓은 계단은 경사진 땅에 걸쳐 거대한 플랫폼이 있는 아트리움으로 유도한다. 이 플랫폼은 로마 공동묘지에 세워져서 다양한 무덤 건축물의 상부를 차단하고 안으로 들어오는 공간을 중재한다. 교회는 그 용도 때문에 전체 길이 112m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성 요한 라테란 성당보다 상당히 길다.
신랑(nave 교회 건축에서 좌우의 측이랑 사이에 끼인 중심부로서, 성당 내에서 가장 넓은 부분이며 보통 예배자를 위한 장소)은 양측에 있는 열주를 통해 지붕이 덮인 거리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기둥들은 성당만을 위해 만들어진 요소가 아니라 로마 건축의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온 것이다. 신랑은 매장의 용도로도 활용 가능한 장소가 되었다. 바닥에는 무덤들이 많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곳은 거리, 묘지, 안식처로서 연회 날에는 활기가 넘치는 가족들의 기념(금지된 관습) 장소가 되었다.
약간 어두운 신랑은 오직 높은 클리어스토리(고딕식 교회의 높은 창이 일렬로 달린 부분)에서 빛이 비치고, 성 요한 라테란 성당처럼 앱스로 유도하지 않고 독자적인 공간인 트랜셉트(transept 십자형 교회의 좌우 날개 부분)로 유도한다. 크립트(crypt 묘지로 쓰이던 교회 지하실) 밑에 있는 성 베드로 무덤 위에 4개의 기둥이 있는 발다치노(baldachino 옥좌·제단 ·묘비 등의 장식적 덮개인 천개, 대리석 ·목재 ·금속 등으로 만들고 4개의 기둥으로 받쳐진다)가 있다. 오늘날, 네이브와 트랜셉트는 같은 개념으로 보일 수 있지만, 4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트랜셉트는 어디에나 필수적인 장소가 되었고 그 후 9세기에는 이곳을 그들의 교회의 중앙 부분으로 만들었다.
첫번째 세례당 First Baptisteries
마르티리움과 바실리카의 의 통합은 여러 장소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세례가 새로운 삶과 잠재적인 구원에 대한 신호임과 동시에 사람들이 교회 커뮤니티에 속함을 상징하는 행위로 자리잡으면서, 세례의 실제적인 관습은 사람을 유연해지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의식을 위해 제공된 공간의 위치와 자연에 대해 사람들도 많은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