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도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혹은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기 위해 많은 연구를 진행합니다.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 미지의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있죠. 그럴싸한 추측에도 큰 감흥을 느끼는 우리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더 큰 감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보다 과학적 접근 방식이 익숙지 않고 모든 자연 현상을 신의 힘으로 생각하던 당시에는 모든 자연 현상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자연스레 상상력이 풍부할 수밖에 없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 창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창조
하늘과 땅, 바다가 생기기 전, 세상 모든 것들은 다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상태를 카오스, 혼돈이라고 부릅니다. 카오스는 혼돈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으나, 원래의 뜻은 '입을 벌리다'라는 뜻이며 이후 명사처럼 쓰이며 캄캄한 텅 빈 공간'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카오스는 형태가 없는 혼돈의 덩어리면서 생명이 없는 거대한 무언가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는 훗날 여러 사물이 될 가능성을 지닌 씨앗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공기, 땅, 바다가 한데 뒤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어느 순간 신과 자연이 개입해 땅과 바다를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이 둘과 분리했습니다. 혼돈이 끝나던 그 순간, 타오르던 부분이 가장 가벼웠기에 날아올라가 하늘이 되었으며 공기는 그다음으로 가벼웠으므로 하늘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땅은 공기보다 무거워 밑으로 가라앉았고, 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땅을 뜨게 했습니다.
이때, 어떤 신인지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있는 힘을 다해 물에 떠 있던 육지를 정리하며 배열했습니다. 그는 육지에 강과 만을 만들고, 산을 일으키고 골짜기를 팠습니다. 그리고 샘이 비옥한 논밭, 돌이 많은 벌판, 울창한 숲을 여기저기에 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혼탁한 공기가 맑아지자 하늘에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새는 공중을, 네발짐승은 땅을, 물고기는 바다를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또 다른 우주창조설도 존재합니다. 이 설에 의하면 모든 것의 처음에 카오스, 혼돈이 생겨나고, 혼돈으로부터 만물의 영원한 거주지인 넓은 가슴을 지닌 대지의 여신 가이아, 심연의 안개에 뒤덮인 저승 타르타로스, 신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며 모든 신과 인간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 지하세계의 암흑의 신인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가 태어납니다. 이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첫 세대 신이며 다섯 명의 태초의 신입니다. 어둠 에레보스는 닉스와 사랑을 나누어 밝은 공기인 아이테르와 낮의 신 헤메라를 낳았고,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혼자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바다의 신 폰토스를 낳았습니다. 그 후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사이에서 오케아노스, 히페리온, 크로노스 등 티탄 12신이 태어납니다. 다른 서술에서는 카오스에게서 태어나 카오스 위에 떠 있던 밤의 여신 닉스의 알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가 태어났으며, 이 에로스가 가지고 있던 화살과 횃불로 모든 사물을 찌르거나, 사물에 생기를 주어 생명과 환희를 만들어냈다고도 합니다. 태초의 신들과 티탄 12신에 대해서는 이 이야기가 끝난 뒤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정확한 사실일 수는 없지만, 어떻게 되었든 이런 방식 중 하나로 만들어진 이 세상은 생명으로 가득했지만 지적인 생물이 없었습니다. 신에게는 고등 지능을 지닌 생명체가 절실했습니다. 창조의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신만의 고유한 재료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하늘로부터 방금 분리된 흙 속에 어떤 종자가 아직 잠재하고 있었을 무렵, 그 흙을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을 처음 만든 신이 바로 프로메테우스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토양에서 흙을 조금 떼어내 물로 반죽한 후 신과 유사한 모습의 인간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땅을 보고 있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직립 자세를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인간은 얼굴이 하늘을 향했고,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창조되기 전 이미 지상에 거주하고 있던 거신족인 티탄 신족의 신 중 하나였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는 인간과 그 외 동물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일을 감독하기로 했고, 에피메테우스는 여러 동물들에게 힘, 지혜, 속도, 용기 등 각기 다양한 선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을 날아야 하는 동물에게는 날개를 주고, 땅을 파거나 사냥을 해야 하는 동물에게는 손톱이나 발톱을 주었습니다. 어떤 동물에게는 몸을 덮는 단단한 껍질을 주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 되어야 하는 인간의 차례가 오자 에피메테우스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여러 동물에게 다양한 선물을 주다 보니 어느새 선물로 줄 만한 자원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에피메테우스는 형 프로메테우스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혜로운 프로메테우스는 만물의 영장에게 필요한 선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불현듯 한 가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워낙 널리 알려진 이야기여서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혹시 모르셨던 분들이라면 다음 주에 게재될 이야기를 기다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창세기는 기록에 따라 이야기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부분 역시 존재합니다. 혼돈과 최초의 신이 등장하여 세상의 구성 요소를 나눈다는 점과 인간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성경과 신화의 공통된 서술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고대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된 서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화 톺아보기 :: 6. 타락과 대홍수 (0) | 2022.11.29 |
---|---|
신화 톺아보기 :: 5.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 (0) | 2022.11.27 |
신화 톺아보기 :: 3. 신들 2편 (0) | 2022.11.24 |
신화 톺아보기 :: 2. 신들 1편 (0) | 2022.11.23 |
신화 톺아보기 :: 1. 세계관 (0) | 2022.11.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