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건축17 해외사례와 전통 주거의 접목을 통한 미래 주거의 상 해외사례와 전통 주거의 접목을 통한 미래 주거의 상 앞의 포스트에서 살펴본 여섯 개의 해외 집합주택은 사례별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주거의 본질적 가치로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공동체의 삶, 선택의 다양성, 도시 맥락과의 순응성, 변화에 대한 적응성, 지역의 고유함을 간직한 아름다운 경관, 자연 친화성 등을 들 수 있다. 복합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생활의 질을 위한 주거환경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는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거환경은 지역의 특성과 조건 및 주거환경을 이루는 다양한 주체들의 입장과 그들이 엮이면서 살아가는 사회들을 고려했을 때 급격히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람직한 주거환경의 상을 구상하기에 앞서 우리나라보.. 2022. 9. 18.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의 대안 예시 모델 2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암스테르담 비잔티움:: 주상 복합형태의 집합 주거 이 건물은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위치하며 주변에 강과 공원이 접해 있어 주거지로서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공원 측에 면한 매스는 저층의 주거집합을 형성하고 있고, 강쪽 대로변에 면한 부분은 고층의 오피스텔과 일부 집합주택으로 계획되었다. 오피스텔 매스의 1층은 사선 캐노피로 디자인하여 가로에서 볼 때 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고, 상층의 돌출된 원형 매스는 주변 대지에서 강하게 인지되는 디자인 요소가 되며 최상층 펜트하우스의 거실로 사용된다. 암스테르담 도심지에 위치한 이 건물은 주거와 오피스텔, 상가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공원과 면한 곳은 집합 주거를 형성하고 있고, 대로변에는 오피스텔.. 2022. 9. 18.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의 대안 예시 모델 1 주거 선진국 사회 각층의 주거 환경의 개선을 위한 노력은 현재 유럽을 필두로 한 도시 주거, 집합 주거 선진국의 위상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집합 주거는 자칫 잘못하면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거주자들의 개인적 생활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위험성에 노출되기 쉽다. 주거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이러한 걱정을 타개하고자 개인 생활과 공동생활의 공유, 분리 및 주거자의 개성에 맞는 주거환경 조성 방안 등에 대해 다각적인 실험을 시행함으로써 다양한 주거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를 참고하면서 우리의 주거에 맞는 집합 주거 양식을 새롭게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피트 블롬(Piet Blom)의 로테르담 구 항만 집합주택 :: 기존도시 인프라에서의 집합주택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오래.. 2022. 9. 18. 국내 아파트 단지의 문제점 진단 국내 아파트 단지의 문제점 진단 21세기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주거환경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멀리 프랑스의 학자가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통해 우리네 주거문화를 비판한 것처럼 아파트 문화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성행하고 있다.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의 환경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아님에도 불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 아니 유일한 선택이 아파트라고 여기는 곳은 대한민국 외에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주거환경의 획일화, 과거 유산과의 단절, 도시의 다양성 포기라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왜 아파트만을 고집하는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아파트란 주거의 의미 외에 경제적 성공 및 사회적 계층의 기준이 되며 나아가 삶의 목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2022. 9. 18. 400년대 유럽의 상황과 바실리카 크리스트교의 출현 326년, 크리스트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을 때, 이것이 이교도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많은 전통이 이어져왔더라도 그간 잃어왔던 진짜 종교적 관습을 다시 정립하게 되었다. 크리스트교는 신에 더욱 밀접한 관계를 기조로 하며 헬레니즘의 몇몇 대안적 종교 중 하나로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임종에서 거대한 흐름이 바뀌었다. 4세기의 일로, 콘스탄티누스 1세의 크리스트교 개종으로 인해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임종 시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대신관인 막시무스는 누가 황제가 되든지 간에 그가 크리스트교와 교회의 대표 또한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제와 교황으로 대비되는 정치와 종교의 양립이 황제 중심의 한 줄기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2022. 9. 18. 정동교회의 양식과 역사 현주소 서울 중구 정동 34-3번지. 1977년 11월 22일에 사적 제256호로 지정. 1895년 9월에 착공, 1897년 10월에 준공되었으며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다. 교회 내부는 평평한 천장에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며 기단은 석조이고 남쪽 모퉁이에 종탑을 세웠다. 건물은 벽돌쌓기로 큰 벽체를 구성하고 아치 모양의 창문을 낸 고딕 양식의 교회당이다. 1926년 양쪽 모퉁이를 넓혀 삼항식 평면형으로 교회 건물을 증축하였으며 1953년에는 6·25전쟁으로 반파(半破)된 교회를 수리하여 복원하였다. 물론 이런 식의 백과사전 유형 지식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실생활에서 내가 보고 부딪히며 겪는 그 모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평소 개인적인 일로 중구 쪽에 가게 되면.. 2022. 9. 17. 서울 4대 도심축 계획 - 관광문화축 (1) 삼청동 온통 전통이란 색을 칠하기보다는 트랜디한 색을 적당히 첨가한 것 같은 분위기의 지역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서슬 퍼런 독재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던 삼청교육대의 악명을 떨치고 새롭게 재정비한 삼청동은 그 이름만으로도 걷고 싶은 곳, 아기자기한 삶의 향기가 풍기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너무 붐비는 이 길은 삼청동의 아이덴티티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기도 한 것이 아이러니이다. 많은 사람이 삼청동을 거니는 이유로 고즈넉한 분위기와 개성 있는 아담한 규모의 상점, 특색 있는 상품을 취급한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 현 시장 논리에서는 상권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렇게 특색 있는 상점이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인구가 유입하기 시작한 이래 꽤 저.. 2022. 9. 17. 건축가 렘 콜하스의 작업과 특징 건축가 렘 콜하스의 작업과 특징 서울대 미술관을 포함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렘 콜하스의 건축적 특징으로는 정형화된 질서로부터의 자유, 내외부의 공간 관계 변화, 나선형 공간, 공간구성의 연속된 흐름, 공간구성을 통해 나타나는 구조, 반중력적 구조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성격은 기존 질서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러한 의지는 건축적 영감과 창조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이 어느 한 가지 흐름으로 일관하는 것을 방지하여 때로는 점잖은, 때로는 실험적이고 난해한 건축을 만들어낸다. 네덜란드의 쿤스트발은 서울대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기존 도서관이 지닌 개념, 즉 과거의 관습적인 필요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쿤스트발이 위치한 대.. 2022. 9. 17. 서울대학교 미술관(MoA) 외내부 특징 외부 서울대 미술관은 3번에 걸쳐 설계안이 수정되었다. 렘 콜하스 최종설계안에서는 bridge의 개념에서 mixing chamber의 개념으로 바꾸어 설정하였고, 마치 떠 있는 듯한 매스를 제시하였다. 정형적인 박스에 통로로의 미술관프로그램과 그에 따라 생긴 동선으로 측면을 타낸 형태가 만들어졌다. 설계안이 계속 수정된 만큼 외장재 역시 5가지 재료가 언급됐었는데, 결과적으로는 U-profiled glass가 사용되었다. 블랙 콘크리트, 노출콘크리트, 산화 강판, 알루미늄패널. 이러한 순서로 수정을 거듭해 현재 U-profiled glass로 이어졌다. 서울대 미술관은 서울대학교 정문 입구에 당당하게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아주는 서울대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는 듯이 거대한 메스 덩어리가 공중에.. 2022. 9. 17. 노르만이 대성당 양식에 미친 영향 노르만이 우세를 잡아가던 9세기경, 911년도에 카를로스 3세가 노르만 소유의 도시 루앙(Rouen) 근처에서 그들의 왕이 되었다. 놀라울 만한 적응력을 가진 노르만족은 그들의 종교를 버리고 지역 관습과 언어를 흡수했다. 그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발전을 따랐으며, 캉(Caen) 대성당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노르만 양식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노르웨이의 장식적 모티프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시실리아의 노르만족으로부터 영국, 프랑스로 가져온 이슬람의 영향 또한 그려냈다. 다양한 흐름 속에서 노르만족은 헤이스팅스 전쟁 후에 이탈리아의 남쪽인 시실리아와 북아프리카, 영국을 정복했다. 새로운 통치자는 영국 지역의 전체 종교, 상업, 정치를 변화시켰지만 그들의 지배 권역이 영국에서 북프랑스, 남이탈리아, 시실.. 2022. 9. 16. 대성당의 기본과 슈파이어 대성당 시기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거래의 증가와 도시들 사이의 경쟁은 건축적 생산물의 빠른 증가와 새로운 형태에 대한 실험을 이끌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석조 아치 천장(vault 아치에서 발달한 반원형 천장)를 도입한 것이다. 이것은 공간적이고 구조적이며 상징적인 심오함을 의미한다. 석조 아치 천장을 지지하기 위해, 측면 통로는 가마의 구조적 버팀목 역할을 하며, 건물 내부는 통로를 통해 아치와 시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3자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대성당(cathedral)이라는 단어는 교수의 의자를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로부터 유래했다. 이 단어를 건축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800년경이다. cathedral은 언어학적 의미에서 또한 주교의 의자를 위한 정교한 구성을 갖춘 장치이다. 바티칸 박물관에 보존되고 있.. 2022. 9. 16. 비잔틴의 재부흥과 오토 왕조가 건축에 미친 영향 비잔틴의 재부흥 1000년경, 비잔틴 제국은 바실리오스 2세 치하에서 군사, 행정 분야을 성공적으로 재정비함에 따라 다시 부흥했다. 교회 건물 또한 양식이 재정립되었다. 정사각형 평면에 4개의 기둥이 있는 중앙 기본 돔 형태와 함께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마냥 새로움만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양식에 새 양식을 도입함으로써 신구가 섞인 형태의 교회를 짓길 희망했고, 새로운 나르텍스(narthex 고대 기독교 교회당의 본당 입구 앞의 넓은 홀) 사이에 복도가 펼쳐졌다. 이곳에서 요안니스 황제(John Komnenos)에 의해 완성된 예수 팬토크라이터(Christ Pantokrator 터키에서는 Zeyrek Camii로 알려져있다)를 볼 수 있다. 비잔틴 건축의 가장 큰 영향은 아르메니아로부터 .. 2022. 9. 16. 바실리카와 로마의 기독교 문화 바실리카의 예시, 성 요한 라테란 St, John Lateran 초기 기독교 건축은 초기 기독교 의식이 이루어졌던 로마 건축 양식의 아트리움(atrium)이나 타블리니움(tablinium)이 서서히 발전한 것이었다. 매우 중요해진 바실리카(말단이 둥그렇고, 내부에 기둥이 두 줄을 서 있는 큰 교회나 회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황제의 권위가 드러난 형태 혹은 일반적인 교회 건축의 패턴을 도입했다. 그 첫 번째 예가 314년 로마의 황제 궁으로 지어진 성 요한 라테란 (St. John Lateran) 교회이다. 이 교회의 건립에 있어 바실리카 형식은 매우 논리적인 선택이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에서 그의 칙령을 반포함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제는 두 .. 2022. 9. 16. 인더스 가가 하크라 문명의 도시 기원전 2500년경 쯤 사람들은 발루치스탄 언덕에서 내려와서 남아시아 대륙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강 마을에 정착했다. 인더스강은 남아시아의 주요한 강 중 하나이다. 고대 산스크리트에서 인더스강은 신주로 불리었다. 이들의 언어 기준으로 신주는 힌두가 되었고 그리스에서는 인더스라 불렀다. 이 단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사용했다. 인더스강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멜루하 문명과 유사하게 부른 듯 하다. 아라비아만을 통해 선박으로 거래하거나 북부 육로로 교역한 동시대의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넓은 지역의 인류 및 신화의 형상이 있는 수천개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이 당시 시민에게 나누어졌을 것이라 추측했다. 발견된 유물에는 무역 네트워크를 위.. 2022. 9. 15. 초기 환상열석, 이집트, 인더스, 비커, 안데스 기원전 3500년경 초기 환상열석은 옆으로 나란히 세웠을 때 지름의 크기가 18~30m 정도였다. 대부분 그것들은 마을 주변이나 씨족 집단 주변에 있었고 그 지역의 돌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원의 건축적 표현은 그렇게 일정하지 않았다. 환상열석은 둥글거나 타원형의 형태를 보이며 주변에 동심원의 둑을 두르고 있으며 대부분은 거리에 가까이 있다. 몇몇은 매장과 관련이 있고 나머지는 화장과 관련이 있다. 대비아트의 렌호든 같은 몇몇 지역에서는 환상열석의 돌이 세워져 있지 않고 땅에 평평하게 눕혀져 있었다, 달이 지는 곳과 관련된 위치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지역의 중앙에서 고고학자들이 사람의 뼈를 화장시킨 불구덩이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다른 환상열석들의 구조적 특징으로는 굴이 있다는 점이다. 많은 환상.. 2022. 9. 15. 고대 건축 영향 요소와 메소포타미아, 고대 도시 인더스, 중국, 이집트는 지리학적으로 그들의 인류 문명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히 성장했고, 그 위치에서 그들의 힘을 비축했다. 중국은 히말라야 너머에서 수입된 금속이나 소금에 의존하지 않았다. 인더스강 협곡 역시 비교적 자급 자족이 가능했다. 이집트인들은 에게 섬이나 남쪽 누비아 섬에서 금속을 수입해오는 등 다소 교역에 의존적이었다. 그들은 그런 여건에서도, 몇백 년 동안 외부 침입이나 영향력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었다. 기원전 4000년경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지역에는 높은 고지대에 걸쳐 광활한 마을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있었다. 거주자들은 이 거친 협곡을 곡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 정도로 몇 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은 현재 이란.. 2022. 9. 15. 왕권 이전의 이집트 무덤 건축 문화 왕권 이전의 이집트 초창기 북아프리카는 한때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넘쳐나는 광활하고 비옥한 숲과 목초지의 땅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에, 극적인 온난화가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치면서 북아프리카의 기후를 바꾸었고, 끊임없는 모래의 유입으로 우리가 지금 사하라 사막이라고 부르는 곳이 생겼다. 사람들은 모로코, 스페인을 넘어 서쪽으로 또는 나일강의 강기슭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기원전 4세기 이집트에는 촌락들이 마을로 성장하고, 에게 섬들과 나일강을 통해 무역 활동이 진행되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당시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경우와 달리, 나일강의 인구 밀집이 당시 기존의 사회시스템을 초월하는 모습은 몇몇 예시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 중.. 2022. 9. 15.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