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여러 시대를 거치며 결국 타락한 인류를 벌하기 위한 제우스의 대홍수까지 함께 살펴봤습니다. 인류가 이대로 절멸할 것인지, 오늘 이야기로 결과를 확인해보세요. 오늘로 마무리되는 세계 창조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온 세계가 물에 잠긴 와중에 오직 파르나소스 산만이 물 위에 솟아 있었는데, 그곳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과 에피메테우스의 딸이자 데우칼리온의 아내인 피라 이렇게 단 둘이 남아있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을 받아 피난을 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아챈 프로메테우스가 묶여있는 자신을 찾아와 극진히 챙기는 아들에게 방주를 만들어 대비하라 알려준 덕에 이 둘은 다가올 재앙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9일 밤낮으로 계속된 대홍수에서 이 두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데우칼리온은 정직한 사람이었고 아내 피라도 신들을 충실히 숭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지상세계에 이 부부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인간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흠잡을 데 없는 삶과 신을 섬기는 경건한 태도를 돌이켜 보고는 북풍 보레오스로 하여금 비구름을 쫓게 했습니다. 그러자 물에 잠긴 땅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의 왕 포세이돈도 그의 아들 트리톤에게 소라고둥을 불어 물이 바다로 퇴각하도록 명령하게 했습니다. 트리톤의 소라고둥 소리에 물은 일제히 복종하여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내천은 큰 물줄기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데우칼리온과 피라 부부는 걱정이 컸습니다. 세상에 인간이라고는 둘밖에 살아남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입니다. 둘만 남아 걱정스러웠던 데우칼리온은 피라와 함께 신에게 어찌하면 좋을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홍수의 여파로 인해 더러운 이끼들로 더럽혀진 신전에 들어갔습니다. 성화조차 꺼진 제단 앞에 엎드려서 법의 여신 테미스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멸망한 인류를 어떻게 전과 같이 만들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기도하자 신탁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머리에 베일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옷을 벗고 이 신전을 떠나라. 그리고 너희 어머니의 뼈를 어깨너머 너희 뒤로 던져라.”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효성이 깊은 피라는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울면서 다른 방법이 없는지 간청했지만, 데우칼리온은 신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깊게 고민하던 데우칼리온은 어머니가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를 뜻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뼈란 대지를 이루는 바위를 말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피라에게 들려주며 아내를 안심시킨 후 그들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옷을 벗고 주변에 보이는 돌을 주워 뒤를 향해 어깨너머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다소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돌이 말랑말랑 해지며 새로운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던져진 돌은 마치 조각가에게 반쯤 조각된 덩어리와 같이 점점 인간의 형태에 가까워졌습니다. 형태가 변하면서 돌의 주변에 있던 습기 찬 진흙이 살이 되고 돌 부분은 뼈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돌의 결을 뜻하는 venis라는 영단어가 그대로 혈관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남편인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었고, 아내인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에게도 인정받은 인간인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되었으며, 이들이 창조한 종족은 튼튼해서 노동에도 알맞았습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인류의 기원입니다.
세계의 탄생부터 인류의 탄생까지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 창조와 인류의 기원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글 여러 편에 걸쳐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오래전부터 시인들은 신화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했던 프로메테우스를 시제로 삼기를 즐겼습니다. 신화 속에서 그는 인류의 벗으로서, 제우스가 인류에 대해 크게 분노했을 때 인류를 위해 중간에 개입했고, 인류에게 문명과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위해 노력한 모습 자체는 제우스의 의지에 반대하는 모습이 되어버렸고, 결국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거대한 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만약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의지에 복종하려고 했더라면 고통스러운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제우스가 자애롭다느니 같은 신이라느니 하는 단순한 이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제우스보다 한 세대 위의 신인 티탄 신으로서 그 어떤 신보다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한 현명한 신이었기에 제우스가 왕위를 안전하게 계속 보전할 수 있는 비밀을 알고 있었고, 만약 이 비밀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더라면 그의 총애를 받을 게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의 신념을 꺾는 것을 극도로 경멸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프로메테우스는 부당한 수난에 대한 영웅적인 인내, 난폭한 압제에 반항하는 의지력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신들 편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제우스가 신들의 왕이 된 이야기와 더불어 올림포스 주신의 전 세대인 티탄 신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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