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제우스와 올림포스 주신들을 3세대로 놓고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창공의 신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통칭 2세대로 구분할 수 있는 티탄 신들과 그 형제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티탄 신들보다 한 세대 앞선, '프로토게노이'라 불리는 1세대 신들과 그 1세대 신들의 유래, 기록마다 다른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라노스는 하늘이 의인화된 신으로 하늘, 창공의 신입니다. 태초의 여신 가이아가 홀로 낳은 자식이라는 이야기가 많으며 산맥의 신 우로스(우레아)와 바다의 신 폰토스와 형제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관에서 전 우주를 지배했던 최초의 신들의 왕입니다. 신들의 거처 자체를 의미하는 신이기도 하며 몸에는 별이 박혀있고, 비를 내려 대지를 풍요롭게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가이아의 첫 번째 남편으로 하늘인 우라노스는 매일 지상을 덮어 가이아와 관계를 가졌고, 전편에서 언급한 티탄 12신, 헤카톤케이레스, 키클로페스를 낳습니다.
우로스는 산이 의인화된 신으로 산, 산맥의 신입니다. 산맥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어 복수형인 우레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가이아에게서 태어났으며 우라노스, 폰토스와 형제지간입니다. 기록에 따라 다른 남매들로 밤의 여신 닉스, 어둠의 신 에레보스, 아난케, 시간의 신 크로노스(제우스의 아버지와 이름이 같다), 대기의 신 아이테르, 지하세계 타르타로스가 있다고도 전해집니다.
폰토스는 바다의 신으로 원시적인 바다를 상징하는 1세대 신입니다.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로 바다를 뜻합니다. 우라노스, 우로스와 형제이며 가이아가 홀로 낳은 자식입니다. 어머니 가이아의 두 번째 남편으로 가이아와 관계하여 바다의 노인으로 불리는 네레우스와 타우마스, 바다의 괴물로 불리는 포르키스, 케토, 에이리비아를 낳습니다. 태초의 신 가이아와 아이테르의 아들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아이테르는 빛과 대기, 천공의 신으로 어둠 에레보스와 밤 닉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낮의 여신 헤메라와 남매 사이입니다. 가이아가 홀로 낳은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헤메라와 결혼해 바다의 여신 탈라사를 낳았다고 합니다. 아이테르는 일반적인 하늘과 구분되는 더 높은 하늘을 의미하는데, 이 하늘은 신들이 사는 영원불멸하고 깨끗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헤메라는 낮이 의인화된 여신으로 빛과 대기의 신 아이테르와 남매 사이입니다. 어머니인 밤의 여신 닉스와 대비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암흑과 밤 사이에서 아이테르와 헤메라가 태어난 이야기는 암흑에서 빛이 생겨나고 밤에서 낮이 생겨났음을 상징합니다. 헤메라와 닉스는 하데스의 나라에 머물며 교대로 지상으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둘이 동시에 같은 곳에 머물지 못합니다.
가이아는 대지가 의인화된 여신이며 카오스에게서 태어난 태초의 신, 혹은 태초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 신으로 간주됩니다. '만물의 어머니'이자 '신들의 어머니'로 '창조의 어머니신'입니다. 히기누스의 기록에서는 아이테르와 헤메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여겨지며 우라노스, 폰토스와 남매지간이라고 언급합니다. 가이아는 신들의 계보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어머니신으로 자식을 홀로 낳거나, 남신과 관계하여 신이나 괴물 등 다양한 자식을 낳았습니다. 헤시오도스의 기록에 따르면 카오스보다 나중에 태어났고, 에로스보다 먼저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운명의 비밀들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신탁을 계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델로스 신전의 초대 주인이기도 해서 아폴론의 신탁보다 더 오래되고 확실한 신탁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에레보스는 암흑을 의인화한 신으로 어둠의 신입니다. 지하세계의 암흑을 상징하는 지하세계의 신이기도 합니다. 카오스에게서 태어난 아들, 카오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밤의 여신 닉스와 관계하여 낮 헤메라와 높고 밝은 하늘과 대기의 아이테르를 낳았다고 합니다. 에레보스의 공간인 암흑, 에레보스 그 자체는 지상과 타르타로스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 역할을 합니다. 저승의 강 스틱스에서 죽은 자들을 태우는 뱃사공 카론도 에레보스와 닉스의 자식입니다.
닉스는 밤을 의인화한 여신으로 밤의 여신이며 검은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카오스로부터 가이아, 에레보스와 함께 태어났으며 가이아의 자식으로 보기도 합니다. 에레보스와 관계하여 아이테르, 헤메라, 카론을 낳았습니다. 헤시오도스의 기록에 따르면 불화와 분쟁의 여신 에리스, 죽음의 신 타나토스, 잠의 신 히프노스, 운명의 여신들인 모이라이, 죽음과 파멸의 신 케레스, 복수와 율법의 여신 네메시스, 숙명의 신 모로스, 불평과 조롱의 신 모모스, 꿈의 신 오네이로이, 아픔의 신 오이지스, 노쇠의 신 게라스, 애정의 신 필로테스, 기만의 신 아파테, 불화의 신 에리스, 석양의 신 헤스페리데스 등 개념이 의인화된 신들을 홀로 낳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히프노스, 타나토스와 함께 타르타로스에 살고 있으며 닉스와 교대로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신화 내에서도 제우스마저 두려워하는 태초의 존재의 위엄을 보입니다.
타르타로스는 지하세계의 깊은 곳을 상징하는 나락의 신으로 태초의 신이자 공간의 개념이기도 합니다. 카오스에서 형성된 신이라는 이야기와 아이테르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이아와 관계해 티탄족인 티폰과 에키드나를 낳았다고 합니다. 타르타로스는 또한, 세상의 가장 깊은 곳 하데스보다 더 아래에 있는 공포스러운 처벌의 공간으로 묘사되며 지표면과 타르타로스까지의 거리가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타르타로스는 한 번 갇히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음침하고 우울한 지하세계 그 자체이며 제우스에게 반항하거나 그의 노여움을 산 신들이 이곳에 유폐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지옥으로 보기보다는 대지 가이아를 기준으로 창공 아이테르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많이 언급되지만, 태초의 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카오스의 자식인 가이아와 닉스의 남매, 혹은 카오스와 관계하여 가이아와 닉스를 낳았다는 존재로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고, 가이아와 타르타로스, 그리고 에로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대로 가며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전해집니다. 사랑을 의미하는 신이지만 태초의 존재로서 에로스가 상징하는 성애는 우주 전체의 생명력, 우주 만물을 탄생하게 하는 근원을 의미합니다.
카오스는 태초의 혼돈, 혼돈의 신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본래는 거대한 틈, 텅 빈 공간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이름 자체에 입을 벌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세계관에서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신입니다. 성별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가이아의 첫 남편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질서라는 의미의 코스모스에 대립하는 의미이며 누가 그를 낳은 것도, 만든 것도 아닌 그저 스스로 생겨난 존재 자체로 광대한 창조의 힘이자 존재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우주의 창조자로 신화 내에서 인격신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 신화에서 그리 많이 언급되지는 않으나 세계관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1세대 신과 태초의 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들을 나타내는 말인 프로토게노이는 제우스를 포함한 올림포스 주신들의 조상으로, 신화 속에서 제우스조차 그들의 뜻을 함부로 여길 수 없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세계관 내에서 이들은 인격화된 신들을 포함하는 세계의 근본적인 힘과 환경을 의미하는 존재들로 섭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종교에서 언급하는 신의 개념에 비추어 본다면 신화 안에서의 초월적 존재에 가까운 위상을 봤을 때 프로토게노이가 현대 기준 신의 모습에 더 부합하기도 합니다. 여러 이야기에서도 이들이 나서면 후대 신들이 바로 물러설 정도의 어마어마한 위세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굵직한 요소와 신들에 대해 죽 살펴본 만큼, 다음 주 월요일에는 제우스 이전 왕의 계보와 최고신들이 각각 왕이 된 일대기를 엮어서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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