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렘 콜하스의 작업과 특징
서울대 미술관을 포함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렘 콜하스의 건축적 특징으로는 정형화된 질서로부터의 자유, 내외부의 공간 관계 변화, 나선형 공간, 공간구성의 연속된 흐름, 공간구성을 통해 나타나는 구조, 반중력적 구조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성격은 기존 질서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러한 의지는 건축적 영감과 창조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이 어느 한 가지 흐름으로 일관하는 것을 방지하여 때로는 점잖은, 때로는 실험적이고 난해한 건축을 만들어낸다.
네덜란드의 쿤스트발은 서울대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기존 도서관이 지닌 개념, 즉 과거의 관습적인 필요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쿤스트발이 위치한 대지는 남쪽 면에서 고속도로와 면하고 북쪽 면에서 조각공원이 접하는 이중적인 맥락이 가능한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구성된 건물은 교차하는 두 개의 내부 통로로 인해 독립된 4개의 사각형 형상으로 분리되며 동시에 동선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각각의 공간을 공존하는 ‘하나의 전체’로 짜임새 있게 구성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하나의 연속된 나선을 만들어 내고 이 나선 속에서 끊임없는 동선이 생성된다. 연속된 순환을 만드는 내부 경로를 따라가는 동선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종료점에서 다시 시작점과 만난다. 전시실, 강의실, 레스토랑으로 나눠진 프로그램은 명확한 경계나 구획 없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에 따라 외관상으로는 한 개의 커다란 메스를 취하고 있지만, 내부는 복잡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에게 연속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 체험을 제공한다. 층 구성 역시 바닥 면과 바닥 면이 단순히 층층이 쌓인 것이 아니라 각 층의 단면이 위, 아래에서 서로 닿을 수 있게 하여 공간에 연속성을 부여하며, 경사면을 전시 공간과 격리해 외부공간과 관계를 맺게 함으로써 경사로에 의한 연속적 공간 이동 속에서 내-외부 공간 관계의 극적 전환을 연출한다. 이와 유사하게 도시 문맥을 통한 접근과 내부 동선에 대한 고려를 통해 계획된 건물로 베를린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이 있다. 대사관 건물 내부의 흐름은 8층까지의 전체 층을 돌면서 내 부기능을 연결하는 나선의 램프로 구성된다. 또한 주변 도시 환경을 고려한 공간의 적절한 비움을 통해 건물 내부에서 외부 조경을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시애틀 공립도서관은 기존 질서로부터의 탈피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작품이다. 렘 콜하스는 장서의 보관과 독서라는 기능만을 고집해 온 과거의 도서관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이 발전된 현대 사회에 부합하지 않아 사양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에서 도서관이 가진 기존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모든 미디어를 다루는 복합적 정보 보관창고, 그리고 도시 속에서의 사회적 중심으로서 기능하는 도서관을 구상했고 대표적인 프로그램별로 다섯 개의 플랫폼을 규정하여 공간계획을 결합하고 강화했다. 플랫폼은 내부 프로그램과 일조, 도심 상황에 대한 고려를 통해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가지며 프로그램과 공간 구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외부 형태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우트레히트 대학 에듀카토리움(Educatorium)은 슬라브가 대지의 연속된 개념으로 사용되며 층 구분을 모호하게 하여 자연스럽게 건물과 통합된다. 내부엔 경사로가 사용되어 수직 동선을 해결하는 동시에 공간 체험과 학생 모임 장소라는 기능을 가져 건물의 주요 공간 요소로서 작용한다. 에듀카토리움의 동선 순환 체계는 주 출입구를 지나 드러나는 넓은 홀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모두 평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경사로를 형성, 상하층을 이동하도록 계획되어있다. 아래쪽 슬라브는 레스토랑과 연결되고, 상층으로 올라가면 공연 홀을 만나게 된다. 계단을 통해 공연장 끝인 3층으로 오르면 작은 홀이 나오는데, 외부에서 인식되는 슬래브와 천장이 서로 만나 연결되는 부분을 곡선 처리해 새로운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단편적이지 않은 동선은 다양한 공간을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경험하도록 한다.
각각 프랑스 파리와 보르도에 지어진 빌라 달라바와 메종 보르도는 둘 다 한 가구를 위한 주택이다. 두 작품 모두 기존 주택의 관념에서 벗어난 흥미로운 결과물로 주목받았다. 빌라 달라바에서는 벽을 통해 실제 구조체인 가는 기둥을 가리는 기법으로, 메종 보르도에서는 3개 층의 메스 중 중간층을 유리로 마감하는 기법으로 대지 위에 떠 있는 느낌의 볼륨을 만들었다. 건축주의 까다로운 제약을 안고 시작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빌라 달라바에서는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건축주 부부의 공간과 딸의 방이 긴 통로를 통해 연결되어있으며, 도시 문맥을 고려하여 옥상층에서의 시선 축이 자연스럽게 파리 시내와 연결되도록 하였다. 가림 벽 뒤로 건물을 지지하는 사선의 기둥을 불규칙하게 세워 건축적 산책로로서 특수한 공간 체험을 경험하게 하였고 외부 계단, 내부 원형 계단, 직선 계단, 경사로, 기존 대지의 경사 등 다양한 동선을 제공하는 장치들을 통해 공간 속의 자유로운 운동을 실현했다. 메종 보르도에서는 건축주가 거동이 불편하여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는 특수한 제한을 극복하여야 했는데, 렘 콜하스는 이에 대해 약 10제곱미터 면적 규모에 건축주의 방을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구성하는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엘리베이터 방은 3개의 메스로 이루어진 건물 내부에서 정지하거나 이동함으로써 건물의 평면과 기능을 변화시킨다. 건축물에서의 이러한 파격적인 작동성은 이후 패션 브랜드 프라다와의 협업을 통한 프라다 트랜스포머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리움미술관 삼성 아동 문화센터는 서울대 미술관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울 도심에 지어진 건물이다. 그래서인지 서울대 미술관과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대지의 형태와 맥락에 맞게 구성된 건물의 윤곽은 서울대 미술관의 대지에 뜬 사선 매스를 연상시키고, 유리 내부의 블랙박스라는 독립된 구조물은 미술관에서 불투명 유리 매스 안의 나선형 계단을 갖는 코어부와 대비된다. 동선 계획에도 마찬가지로 경사로와 에스컬레이터가 사용되어 수직 동선인 동시에 공간의 연속성이 시각적 변화감을 부여하는 건축적 산책로의 역할을 한다. 내부 구성에 대한 암시는 불가능한 서울대 미술관의 불투명 유리와 달리 아동 문화센터의 외장은 얇은 프레임의 통유리벽 유리로 처리되어, 내외부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외부에서도 내부 블랙박스의 존재를 인지하게 한다는 차이는 있다. 그러나 이 유리 마감은 부유하는 블랙박스와 블랙박스 위의 떠 있는 매스를 강조하여 마찬가지로 대지 위에 부유하는 듯한 가벼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또한, 블랙박스 자체가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여 동선을 박스 아래, 내부, 위로 나눔으로서 관람객들은 역동적인 공간 체험하게 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세워진 국립무용극장은 다소 복잡한 외피의 내부에 간결한 동선을 부여했다. 부분들의 대조와 어긋남을 통해 각각 독자성을 부여하였으며 프로그램에 의해 분리되는 세 개 볼륨의 분할이 입면에서 더욱 부각된다. 내부 공간에서는 불안정한 구조처럼 보이는 떠 있는 스카이 바를 통해 공간의 긴장감을 유도한다. 타원형의 스카이 바는 중심을 가로지르는 원형의 보와 입구 뒤쪽 벽 상단과 연결되는 케이블로 지지가 되는데, 사람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케이블이 수축, 팽창되어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구조적 불안정의 공간화를 통한 긴장감은 서울대 미술관을 포함하여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성격 중 하나이다.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교회의 양식과 역사 (0) | 2022.09.17 |
---|---|
서울 4대 도심축 계획 - 관광문화축 (0) | 2022.09.17 |
서울대학교 미술관(MoA) 외내부 특징 (0) | 2022.09.17 |
노르만이 대성당 양식에 미친 영향 (0) | 2022.09.16 |
대성당의 기본과 슈파이어 대성당 (0) | 2022.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