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청동
온통 전통이란 색을 칠하기보다는 트랜디한 색을 적당히 첨가한 것 같은 분위기의 지역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서슬 퍼런 독재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던 삼청교육대의 악명을 떨치고 새롭게 재정비한 삼청동은 그 이름만으로도 걷고 싶은 곳, 아기자기한 삶의 향기가 풍기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너무 붐비는 이 길은 삼청동의 아이덴티티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기도 한 것이 아이러니이다. 많은 사람이 삼청동을 거니는 이유로 고즈넉한 분위기와 개성 있는 아담한 규모의 상점, 특색 있는 상품을 취급한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 현 시장 논리에서는 상권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렇게 특색 있는 상점이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인구가 유입하기 시작한 이래 꽤 저렴하던 삼청동의 지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면서 삼청동의 분위기를 자아내던 소규모 상인들이 삼청동의 건물 임대 시세를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상황인지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2) 북촌 한옥마을
위의 삼청동과 비교해보면 전통이란 색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북촌 8경으로 인해 경관 명소로서 그 독특한 이름을 날리게 된 북촌 한옥마을은 우리 전통 한옥의 고즈넉한 멋과 현대적인 서울 도심의 복잡다단하면서도 도회적인 이미지가 어우러진 경관을 선보인다. 하지만 한옥마을이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북촌은 마을로서의 정체성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원래 고풍스러운 주거단지였어야 할 곳이 많은 관광인구의 유입으로 순수 주거 기능에 많은 침해를 받음으로써 실제 주민들은 다른 곳에서 거주하는 북촌 한옥 전시장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북촌 한옥을 소유한 실소유주들은 서울에서 한옥 유지를 위한 지원을 받을 명분으로 한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3) 인사동
북촌 한옥마을이 고즈넉한 한옥 사이 골목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면 인사동은 시끌벅적한 전통 시장을 거니는 듯 볼거리가 푸짐하다. 전통문화의 거리로 잘 알려진 인사동은 오래전부터 전통과 연계된 상업 거리로 그 입지를 다져왔다. 전통찻집, 갤러리, 장식품, 기념품, 먹거리 등 우리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다양한 업종이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인사동 골목은 다양한 콘텐츠가 계속해서 연계되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다. 분명 인사동 골목 그 자체로의 개성과 볼거리는 풍부하지만, 인사동 골목 다음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그 정체성과 스토리가 확실해 보이지 않는다. 인사동이 너무 부각되어서 그런 것인지, 혹은 현재 그 주변의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탓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4) 낙원상가 – 청계천 – 명동
위의 세 지역과는 비교되는 현대적인 성격을 띠는 가로와 상권이 형성되어있는 낙원상가, 청계천, 명동은 이질적인 듯 자연스럽게 각자의 형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신기한 장소들이다. 악기 관련 상권으로 유명한 낙원상가와 먼 옛날 풍물시장의 전통을 이어가듯 헌책방과 비디오, 여러 잡화 등등 그 종류를 헤아리기 힘든 청계천 가로변, 서울의 쇼핑 메카임과 동시에 관광객 유치로 활발한 명동거리까지 외부인의 발걸음을 끌기에는 충분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장소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장소 간 연계되어있어야 할 보행로나 연속적인 가로의 분위기가 그 사이사이에 마련되어있지 않아 현재의 도심 축 계획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미완인 채로 방치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5) 도시설계 측면에서 바라본 각 장소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도심 2축의 구성 요소들인 이 장소들은 제각기 외부인을 유입할 수 있는 개성과 멋으로 서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정 운영 방침이 바뀌면서 축 정비 계획이 사실상 멈춰버린 지금은 각 장소가 점적 요소로서의 국지적인 상권과 개별 단위 규모의 가로를 형성하고 있을 뿐, 서로 간의 연계성 부족으로 인해 그 많은 인구의 부드러운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개미가 과자 부스러기에 모여드는 마냥 포화상태를 넘어 외부 인구 유입의 과포화 상태를 겪고 있는 형국을 확인할 수 있다. 당장 그 지역의 상인들에게는 고객이 많이 모이기에 좋은 일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외의 다른 가치에서는 충분히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삼청동의 지가 상승과 그로 인한 기존 소규모 상인들의 거취 불분명, 북촌 한옥마을의 도심 공동화와 유사한 공동화 현상, 인사동의 풍부하지만 보이지 않는 단편적인 가로 성격 등 유입인구 과포화에 따른 환경의 악화는 점적, 선적, 면적 차원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도시 상황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을 둘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개별적인 점적 요소의 인구 과포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인구 이동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도할 수 있는 도심 축 계획이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삼청동에서 북촌 한옥마을로 이동하는 길도 그 가시성이 명확하지 않아 찾는 도중 애를 먹는 경우가 가끔 있으며, 삼청동에서 한옥마을로 이동했다 한들 한옥마을의 관광이 끝난 후 인사동으로 가는 사이 여정에서 한옥마을과 인사동이 연결된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어 여행의 맥락에서 볼 때 꽤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또한 북촌과 인사동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항목마다 언급했듯이 장소와 장소 간의 연결, 선적 요소로서의 도심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차도 옆에 좁게 나 있는 인도를 따라 걷는 느낌밖에 들지 않아 그 여정이 꽤 지루하고 정신적인 피곤함을 불러왔던 바, 예전에 계획되어 진행수순을 차근차근 밟고 있던 서울 도심 4대 축 계획이 본연의 역할을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적 요소의 체계적 관리를 통해 각 관광거점을 연결하고, 인구 순환을 자연스럽게 하며 그 루트를 따르는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된, 걷고 싶은 가로를 누비게 하는 것. 한강을 따르는 선적 요소만이 자연스레 형성되어있는 횡 방향의 일방적인 선 요소가 아닌 N서울타워를 종착지로 하는 종방량의 새로운 선 요소가 각각 유명한 지역을 넘어 서울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0년대 유럽의 상황과 바실리카 (0) | 2022.09.18 |
---|---|
정동교회의 양식과 역사 (0) | 2022.09.17 |
건축가 렘 콜하스의 작업과 특징 (0) | 2022.09.17 |
서울대학교 미술관(MoA) 외내부 특징 (0) | 2022.09.17 |
노르만이 대성당 양식에 미친 영향 (0) | 2022.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