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로 ‘거인들의 싸움’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기간토마키아는 제우스에 대한 가이아의 분노, 혹은 우주의 통치권에 욕심을 낸 기간테스의 신들에 대한 도전이라는 두 이유를 원인으로 생각하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앞서 최고신 연대기에서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쓰러뜨리는 과정을 알아봤던 적이 있는데요. 크로노스가 거대한 낫으로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승리를 쟁취하던 그 순간, 우라노스의 성기가 바다에 떨어지며 거품을 일으켰고, 그 거품에서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이 때 아프로디테만 태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흘러내린 피가 대지, 즉 가이아에게 떨어져 24명의 거인이 태어나게 됩니다.
신화에서는 이 거인들을 통틀어 기간테스라고 명명했고, 이들 한 명 한 명을 따로 부를 때는 기간테스의 단수형인 기가스라고 지칭합니다. 히기누스의 ‘이야기’ 서문에서는 기간테스가 어머니 가이아와 아버지 타르타로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버지가 우라노스라고 언급되며 가이아가 기간테스를 낳았다고도 표현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여러 탄생 설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점은, 기간테스의 어원이 “땅에서 태어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이든 가이아의 자식임이 강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기간테스는 분명히 신의 자식들이지만 영생불멸의 신적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불멸이 아닌 존재임이 아쉽지 않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존재였다고 묘사됩니다. 거인족답게 엄청난 힘을 지닌 거대한 체구의 존재인 점은 여러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며 흉악한 외모는 기록에 따라 그 묘사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카에서는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하반신은 뱀의 형상을 지닌 무시무시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논노스에서는 머리털이 뱀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하며,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안내서에서는 기간테스의 하반신이 뱀이라는 것에 반대하죠.
이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는 다양한 기록들 사이에 다소 상충되는 의견이 있습니다. 모든 문헌의 이야기를 전부 서술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므로, 지금부터는 기간토마키아에 대해 가장 잘 기록하고 있는 비블리오테카의 내용을 바탕으로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이아는 일전에 우라노스에 의해 타로타로스에 갇힌 자신의 자식들인 키클로페스와 헤카톤케이레스를 구출할 것을 요청하며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최고신이 될 수 있도록 조력했습니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가이아의 요청을 무시했고, 이에 가이아는 크게 분노하여 크로노스를 저주했습니다. 바로 우라노스처럼 자기 자식에게 쫓겨날 것이라는 내용의 저주였습니다. 이 저주의 내용대로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몰아내기 위해 가이아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이아는 제우스가 티탄 신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조력합니다.
그러나 제우스는 코스모스의 지배권을 얻은 후 가이아의 자식들인 티탄 신족을 타르타로스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조력을 함에도 늘 자신의 피붙이가 희생양이 되는 사실에 분노한 가이아는 하늘 우라노스와의 사이에서 기간테스를 낳았으며, 기간테스들을 부추겨 올림포스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거인족인 기간테스는 거대한 바위와 불타는 나무를 하늘에 던지며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올림포스 신들은 번개로 무장한 제우스가 앞장서고 포세이돈과 헤파이스토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테나, 아레스, 디오니소스 등이 전쟁에 임했으며, 승리의 여신 니케가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땅이 울리고 해일이 일어나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로써 기간토마키아가 시작되었습니다.
기간테스와 올림포스 신들 사이의 전쟁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게 이어졌고, 그 기세는 막상막하였습니다. 그러나 올림포스 신들만으로는 기간테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기간테스를 물리칠 수 있다는 신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우스는 인간의 몸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아 기간테스를 물리치고자 했습니다.
제우스의 계획을 알아차린 가이아는 인간으로부터 기간테스의 목숨을 보호할 불사의 약초를 찾습니다. 그러나 제우스는 가이아가 약초를 발견하는 것을 막고자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새벽의 여신 에오스, 달의 여신 셀레네에게 자신이 불사의 약초를 찾을 때까지 태양과 광휘, 달로 하여금 세상을 밝히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온 세상을 깜깜하게 만든 뒤, 제우스는 가이아보다 약초를 먼저 찾을 수 있었고 약초를 먼저 캐서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아테나를 보내 필멸자인 헤라클레스를 불러오도록 명했습니다.
그 유명한 12과업을 이미 완료한 헤라클레스는 기간토마키아에서 신들의 편에 가담하여 히드라의 독을 바른 화살로 뛰어난 공을 세웠습니다. 기간테스의 우두머리라고 볼 수 있는 뛰어난 기가스 알키오네우스는 헤라클레스에 의해 사망했으며, 알키오네우스와 함께 가장 뛰어난 기가스라고 묘사되는 포르피리온 역시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맞아 사망했습니다. 비블리오테카에 따르면 이 포르피리온은 헤라클레스와 헤라를 공격하는 와중에 헤라를 겁탈하려고 했는데, 이 때 제우스가 벼락을 던지고 헤라클레스도 화살을 쏴서 포르피리온을 죽였다고 합니다. 에피알테스는 왼쪽 눈에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맞고 오른쪽 눈에 아폴론의 화살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이외에도 전쟁에서 승리하면 아테나를 아내로 삼겠다고 호언장담한 기가스 엔켈라도스는 아테나가 던진 시칠리아 섬에 깔렸는데, 그의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아 에트나산의 화산을 통해 불을 토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기간테스들은 연달아 패배하게 됩니다. 미마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패배했고, 폴리보테스는 포세이돈에게, 히폴리토스는 헤르메스에게, 에우리토스는 디오니소스에게, 그라티온은 아르테미스에게, 에피알테스는 아폴론과 헤라클레스에게, 아그리오스와 토온은 운명의 여신들에게, 클리티오스는 헤카테에게, 이외의 엥켈라도스, 다른 기간테스들은 제우스의 벼락과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맞고 죽게 됩니다. 비블리오테카에서 언급되지 않은 기간테스 중 한 명인 팔라스는 아테나에게 쫓기다 죽음을 당했으며, 아테나는 팔라스의 가죽을 벗겨 염소 가죽으로 만든 방패 아이기스에 붙였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아테나가 이러한 이유로 인해 팔라스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고도 전합니다. 죽지 않은 기간테스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취를 감췄습니다.
올림포스 신들은 티탄 신과의 전쟁에 이어 기간테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제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게 됩니다. 제우스는 기간토마키아에서 승리한 후 승리의 기쁨을 영원히 기억하며 간직하고자 했습니다. 전쟁을 모두 기억하기 위해서는 고모뻘인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의 권능이 필요했고, 이에 그녀와 9일 동안 동침하여 예술과 학문의 여신 뮤즈, 무사이를 낳았습니다.
오늘은 올림포스 신과 기간테스 사이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인간적인 면모로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서 장대한 이야기를 주로 살펴본 것 같은데요. 신들에게 일어난 장대한 사건은 이후 트로이 전쟁만 다루면 거의 마무리될 듯 합니다. 앞으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백미인 신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룰 예정이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 이야기는 기간토마키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헤라클레스와 그의 12 과업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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